최은영 문학동네

         


할아버지는 더이상 우편함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날

이후로 쇼코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작은 집에서 인형처럼 붙박여 있던 쇼코의 모습이 유령처럼 언

뜻언뜻 눈앞을 스쳤다. 물리치료사가 되었겠지. 그리고 돈을 벌기 시

작했을 테고, 당시의 나는 쇼코가 넘 쉬운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

다. 스물세 살에 벌써 직업을 정하고 태어난 소읍에서 떠나지 못한다

는 건 형편없는 선택이라고,

 그때만 해도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

고 생각했다. 나는 비겁하게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마음속으

로 비웃었다. 그런 이상한 오만으로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

어버렸지만, 그때는 나의 삶이 속물적이고 답답한 쇼코의 삶과는 전

혀 다른, 자유롭고 하루하루가 생생한 삶이 되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내가 머무는 세계의 한계를 부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

은 정반대였다. 늘 돈에 쫓겼고, 학원 일과 과외 자리를 잡기위해서

애를 썼으며 돈 문제에 지나치게 예민해졌다.

영감은 고갈 되었고 매일매일 괴물 같은 

자의식만 몸집을 키웠다.

 그래서 꿈은 죄였다. 아니, 그건 꿈도 아니었다.



  한지는 아픈 동물들을 치료했던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조금의

가망도 없어 보이던 동물이 살아나기도 하고, 쉽게 치료할 수 있을 거

라 믿었던 동물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어 죽기도 한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살릴 수 있는 동물을 죽인 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을 느꼈고

지금도 그렇기는 하지만 최선을 다할 뿐, 그 최선이 항상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배워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기억은 재능이야, 넌 그런 재능을 타고났어."

  할머니는 어린 내게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 너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해라.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

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

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사람이 현생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윤회한다

고 했다. 마음이 기억에 붙어버리면 떼어낼 방법이 없어 몇번이고 다

시 태어나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먹혀

버리지 말라고 했다. 안 그러면 자꾸만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

고 했다. 나는 마지막 그말이 무서웠다.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

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그가 하는 일들이 돈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무능하고 가

치 없는 사람이라고 단죄할 수는 없었다.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필요하다고 여자는 생각했다.헤어롤을 마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그와 같은 사람도 필요하다. 돈을 벌어 가족을 부

양하는 남편이 있는가 하면 집안일을 하며 아이를 돌보는 남편도 있다.

여자는 세상을 살며 그처럼 다정하고 섬세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

다. 깨끗한 샘물 같은 그에게 더러운 욕탕이 되라고는 할 수 없는 일

이었다. 그가 세상에 소용없는 사람처러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는 세상의 그 많은 소용 있는 사람들이 행한 일들 모두가 진실로

세상에 소용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자는 부모와 남편의 죽음을 겪으며 자신의 일부가 죽어버리는 경

험을 했다. 마음속에서 죽어 없어진 그 부분은 죽은 사람들과 함께 세

상에서 사라져버렸다. 한동안은 제대로 숨을 쉴 수도, 잠을 잘 수도,

먹을 수도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오래도록 울고 나니 그들이

없는 삶과 그들이 여자에게 남겨놓고 간 세상이 남았다. 그 모든 것들

이 여자에게는 소중했다. 여자는 여자 안에 여전히 살아 있는 그들에

게 보다 좋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고, 전보다 나아진 자신을 보여주

고 싶었다. 슬픔으로 깨끗해진 마음에 곱고 아름다운 것들만 비춰 보

여주고 싶었다.


온전한 나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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