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 그림산문집 열화당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하시곤 했다.

"화가는 모름지기 자기의 내면세계를 그림으로 말한다."

"화가에게 문장은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산다는 건 소모하는 것이다'


자연의 침묵이 풍요한 내적 대화를 가능케 한다. 그럴 때 나는 물이 주는 푸

른 영상에 실려 막걸리를 사랑해 본다.

 취한다는 것, 그것은 의식의 마비를 위한 도피가 아니라 모든 것을 근본에서

사랑한다는 것이다.악의 없이 노출되는 인간의 본성을 순수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사랑하려는 마음을 가짐으로써 이기적인 내적 갈등과 감정의 긴장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리고 동경에 찬 아름다움의 세계와 현실 사이에 가로놓인 우울한 함정에서 절망 대신에 긍정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그것은 절실한 정신의 휴식인 것이다.그렇다.취하여 걷는 나의 인생의 긴 여로는 결코 삭막하지 않다. 그 길은 험하고 가시덤불에 싸여 있지만 대기에는 들장미의 향기가 충만하다.새벽이슬을 들이마시며 피어나는 들장미를 꺾어 들고 가시덤불이 우거진 인생의 벌판을 방황하는 자유는 얼마나 아프고도 감미로운가!의식의 밑바닥에 잔잔히 깔려 있는 허무의 서글픈 반주에 맞춰 나는 생의 환희를 노래한다.

 나는 고요와 고독속에서 그림을 그린다.자기를 한곳에 세워 놓고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아무것도 나를 방해하여서는 안 된다. 그림 그릴 때의 나는 이 우주 가운데 혼자 고립되어 서 있는 것이다. 번잡한 생활의 소음에 섞여 나도 함께 부유하다가 돌아오는 곳,그것은 무섭도록 하얀 나의 캔버스 앞이다. 그 앞에서 나는 나 홀로 되어 미를 창조한다. 나의 그림은 빛깔을 통한 내적 고백이며, 내 속에서 변형된 미와 자연의 찬미이다.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의 고통과 희열은 하나하나의 붓 자국에 담겨 그림 속에 스며든다.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미의 승리를 확신하고 캔버스를 향해 감행하는 영혼의 도전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내 그림들을 아낀다 .깊은 애정으로써 바라본다.거기에는 나의 진실된 얘기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창조된 생명이 분만될 때까지 꿋꿋하게 기다리는 일만이  예술가의 삶"이라고 갈파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처럼, 꾸준하게 추구하며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날마다 그것을 배우고 고통스러워하며 또 배우는, 그러면서도 그 괴로움에 지침이 없이 그 괴로움에 감사하는 데에 예술가의 생활은 충만하리라 믿어진다.


나는 점잖다는 것을 싫어한다.겸손이란 것도 싫다.그러는 뒤에는 무언가 감추어진 계산이 있는 것 같다.그래서 나는 차라리 솔직한 오만함이 훨씬 좋다. 그런 나를 사람들은 편협하다거나 심하면 미친사람으로 돌리기도 한다.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면 어떠랴, 그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편하다.



내가 갖고 있는 선입감으로 상대방을 대하지 않으려고 ,또 물건은 내 것 네 것, 크고 작다 등으로 자기 판단을 않으려고,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을 부처님께 먼저 바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공감하는 바가 있어 더 물어보지 않았다.그분은 좋은 생각을 오래 갖고 있으면 슬픔이 뒤따르고 슬픈 생각을 갖고 있다 보면 자멸이 올 것이니, 상시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부처님께 바치고 공경심으로 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저항 속에 사는 인간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누그러지고 느긋해질 수 있음은 복잡하게 얽힌 사람의 삶을 예술이 단순화시켜 주기 때문인데, 그 예술을 통해 사람의 삶은 넉넉하고 신선해질 수 있다"

영국 시인 엘리엇


나는 고요와 고독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기를 한곳에 세워 놓고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회색빛 저녁이 강가에 번진다.

뒷산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강바람이 나의 전신을 시원하게 씻어 준다.

석양의 정적이 저 멀리 산기슭을 타고 내려와

수면을 쓰다듬기 시작한다. 저 멀리 노을이 지고

머지않아 달이 뜰  것이다.나는 이런 시간의 적막한

자연과 쓸쓸함을 누릴 수 있게 마련해 준 미지의

배려에 감사한다. 내일은 마음을 모아 그림을 

그려야겠다. 무엇인가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자기 마음대로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참된 자기 것을 가질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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