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네 민음사





참으로 아름다운 5월




참으로 아름다운 5월,

모든 꽃봉오리 피어날 때,

나의 가슴속에도

사랑이 싹텄네.


참으로 아름다운 5월,

모든 새들이 노래부를 때,

나의 그리움과 아쉬움

그녀에게 고백했네.




연꽃<밤과 달과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한 낭만적 서정시로서 슈만의 작곡으로 애창되고 있다.>



연꽃은 찬란한

햇님이 두려워,

머리 숙이고 꿈꾸며

밤이 오기를 기다린다.


달님은 그녀의 연인,

달빛이 비쳐 그녀를 깨우면,

연꽃은 수줍게 얼굴을 들고

상냥하게 님을 위해 베일을 벗는다.


연꽃은 피어 작열하듯 빛나며

말없이 높은 하늘을 바라보고,

향내음 풍기며 사랑의 눈물 흘리고

사랑의 슬픔 때문에 하르르 떤다.




나의 마음 우울해지면





나의 마음 우울해지면,  애타게

지난날을 생각한다.

그때 세상은 그래도 다사로웠고,

사람들은 한가롭게 살아갔었지.


허나 이제 모든 것은 뒤바뀌어,

이곳에는 혼잡!  저곳에는 궁핍!

천상에서는 하느님이 돌아가셨고,

지상에서는 악마가 거꾸러졌다.


하여 모든 것은 참을 수 없이 음울하고,

헝클어지고 썩어 문드러지고 차갑게만 보인다.

이제 한 조각 사랑마저 없다면,

어디에 발 붙일 곳이 있으랴.





비극 1





나와 함께 도망가서 나의 아내가 되어,

내 가슴에 기대어 편히 쉬어라.

머나먼 타국에서는 나의 가슴이

너의 조국이고 아버지의 집이다.


네가 함께 가지 않으면,  나는 여기서 죽고,

너는 혼자서 외롭게 되어,

네가 비록 아버지의 집에 있다 해도,

타국에 나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언




저녁 어둠 다가오고

물결은 더욱 사납게 울부짖는데

나는 해변에 앉아

파도의 하얀 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내 가슴은 바다처럼 부풀고

너를 그리워하는 깊은 슬픔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랑스런 너의 모습,

그 모습 어디를 가나 나의 주변을 떠돌고,

어디를 가나 나를 부른다.

어디서든지,  어디서든지

바람소리 속에서도,  바닷소리 속에서도,

그리고 내 가슴의 탄식 속에서도,


가느다란 갈대를 꺾어 나는 모래에 썼다.

<아그네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러나 심술궂은 파도들

이 달콤한 고백 위로 몰려와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꿈과 삶




낮은 휘황하게 빛났고,  나의 가슴은 타올랐다.

말없이 마음속에 나는 고통을 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밤이 왔을 때,  나는 남몰래

조용한 곳에 피어 있는 장미에게로 갔다.


무덤처럼 소리없이 침묵하며 나는 다가갔다.

눈물만 빰 위로 흘러내렸다.

나는 장미의 꽃받침 속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눈부신 빛과 같은 것이 밖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즐겁게 장미나무에서 잠들었다.

그러자 익살맞은 꿈이 장난을 쳤다.

나는 장밋빛 소녀의 영상을 보았고,

장밋빛 코르셋으로 덮여진 가슴을 보았다.


그녀는 나에게 예쁜 것을,  더할 나위 없는 황금빛으

로 부드러운 무엇인가를 주었다.

나는 그것을 곧 조그만 황금의 집으로 가져갔다.

그 집에는 모든 것이 놀랍게 다채로웠고,

멋있는 원을 그리며 많지 않은 사람들이 빙빙 돌아

갔다.


거기에는 열두 사람이 끝없이 춤을 추고 있었고,

그들은 서로 손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춤이 한 곡 끝나려 하면,

다른 춤이 처음부터 시작되었다.


무도곡이 나의 귀에는 이렇게 울려왔다.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결코 돌아오지 않느니,

너의 모든 삶은 하나의 꿈에 불과할 뿐,

그리고 이 시간은 꿈속의 꿈이려니.>-


그 꿈은 지나갔고,  아침이 밝아온다.

나의 눈은 재빨리 장미를 바라본다,_

오 슬프다! 빛나는 작은 섬광 대신

장미의 꽃받침 속에는 차가운 벌레가 한 마리 숨어

있다.





무슈<하이네가 죽을 때까지 그를 극진히 돌보아준,  하이네의 가장 조용하고,  가장 행복하고,  가장 절망적이었던 마지막 사랑> 를 위하여




너는 꽃이었다,  사랑하는 소녀야,

키스만 하여도 나는 너를 알 수 있었지.

어느 꽃의 입술이 그렇게 보드랍고,

어느 꽃의 눈물이 그렇게 뜨거우랴!


나의 눈이 감겨 있어도,  나의 영혼은

언제나 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는 나를 마주보았지,  행복하고 황홀하게,

그리고  달빛을 받아 요정처럼 빛나며!


우리는 아무 말도 안했다.  그러나 나의 가슴은

네가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들었지_

우리가 한 말은 아무 부끄러움도 아니고,

침묵은 사랑의 순결한 꽃이려니.


소리없는 대화! 남들은 거의 믿지 않겠지,

말없이 사랑만이 오가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즐거움과 전율로 엮어진,  여름밤의 

아름다운 꿈속에 어찌하여 시간이 그리도 빨리 흘러

가버리는지를.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고 결코 묻지 마라! 처

라리

개똥벌레에게 물어보라,  왜 풀숲에서 반짝거리는지를,

물결에게 물어보라,  왜 개울에서 졸졸 흐르는지를,

서녘바람에게 물어보라,  왜 윙윙 불어오는지를.


물어보라,  루비에게,  왜 빛나느냐고,

물어보라,  꽃무와  장미에게,  왜  향기를 풍기느냐

고-

하지만 결코 묻지 말라,  무엇 때문에 고뇌의 꽃과

사자가

달빛 아래 애무하는가를!


나는 모른다,  얼마나 오랫동안

내 서늘한 대리석 궤짝 속에서 졸며

아름다운 기쁨의 꿈을 누렸는지를.  아,  이제

내 조용한 안식의 기쁨은 스러져버렸다!


오 죽음이여!  무덤에 깃드는 그대의 정적만이

우리에게 가장 큰 환희를 줄 수 있다.

어리석고 거친 삶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정열의 경

련과 안식 없는 쾌락을 주었거니.


                  .......................................



드디어 죽음이 온다-   이제 나는 말하리라,

영원히 침묵하기 전에

자랑스럽게.  너를 위하여,  너를 위하여,

나의 심장은 너를 위하여 뛰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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