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낫한 류시화 꿈꾸는돌 






우리는 진리를 얻기 위해 다른 어딘가로 갈 필요가 없다.

우리는 단지 고요해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우리 가슴의 고요한 수면 위로 나타날것이다.


달이 끝없이 비어 있는 하늘을 여행한다.

마음의 연못이 고요하다면

아름다운 날은

자신의 모습을 비추리라.


"숨을 들이쉬면서, 나는 나 자신을 무한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숨을 내쉬면서,

나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꽃꽃이를 할 때,  우리는 꽃 사이에 공간을 두어야 한다. 그러면 각각의 꽃송이는 자신이 가진 최고의 아름다움과 신선함을 드러낼 수 있다.

 그대에게는 많은 꽃이 필요하지 않다.  두세 송이의 꽃이면 충분하다.

인간 존재 또한 행복해지기 위해 공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자신의 안과 밖에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멈추고 고요히 가라앉는 수행을 한다.  또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공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 그렇게 수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해야 할 일,  걱정거리와 후회를 내려 놓고 주변에 공간을 창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최고의 멋진 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멈춤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미래로 달려가는 것을 멈추고, 

 과거의 일들에 대해 괴로워하는 것을 멈추고,

 많은 소를 모으는 일을 멈추는 것이다.

 그대는 자유인이다.

 그대는 생생히 살아 있다.

 눈을 떠 햇빛과 아름다운 하늘을 보고,  주변에 있는 귀여운 아이들을 보라.

 자신의 호흡을 자각하는 것은 그대를 최선의 모습으로 만들 수가 있다.

  그렇게 할 때, 그대는 고요히 가라앉고,  신선해지고,  흔들리지 않고,  분명하게 의식하고,  자유롭고,  지금 이 순간을 삶의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 수 있다.



그대가 자신의 두려움을 마주보기를 겁낸다면,  그대는 그 두려움에 압도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두려움을 조용히 맞아들여 깨어 있는 마음으로 그것을 향해 미소짓는다면,  그것은 힘을 잃을 것이다.



누군가 그대를 화나게 할 때, 말로 대응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그대가 첫번째로 할 일은 행동을 멈추고 자신의 호흡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쓰는 방법이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숨을 들이쉬면서,  나는 내가 화가 난 것을 안다.  숨을 내쉬면서,  화가 여전히 거기 있음을 안다."

 이렇게 두세 번 호흡하고 나면,  내 안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분노가 서서히 가라앉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타인을 불행에 빠뜨리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다.  불행한 상황을 즐거운 상황으로 바꿀 수 있다.



<화엄경>에서 진리의 세계는 빛의 세계와.  '함께 존재하는"  세계로 묘사되어 있다.

 달은 내안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내안에 있다.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사람들 또한 내안에 있다.

차별과 고통이 있는 이 세계는 사바 세계라 불린다.  이곳은 모든 것이 서로의 바깥에 존재하는 세계다.  나는 그대 밖에 존재하고 거기에는 어떤 미움과 비난도 없다.



온 몸과 마음으로,  그대의 전 존재로 그를 껴안아야만 한다.

"숨을 들이쉬면서,  나는 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내 두팔 안에 살아 숨쉬고 있음을,  그리고 숨을 내쉬면서,  나는 안다.  그가 내게 너무도 소중한 사람임을."

그대가 세 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그를 껴안고 있는동안,  그 사람은 그대의 두 팔

안에서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리고 그대 역시 진정한 인간으로 변화하는 걸 느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대는 그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그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대 또한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행복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깊은 이해를 요구한다.  사실 사랑은 이해의 또다른 이름이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대는 올바로 사랑할 수 없다.  

이해가 없다면 그대의 사랑은 상대방에게 고통을 줄 뿐이다.

올바로 사랑하려면

그대는 이해해야 한다.

이해하는 것은 상대방이 겪는 시련과 고통을 깊이 들여다 보는 것이다.




우리는 냉정함과 분노의 씨앗,  또는 습관적인 에너지를 갖고있다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자신의 고통이 줄어들기를 바라선 안 된다.

우리는 깊이 들여다 보면서,  그의 고통이 우리의 고통임을 깨닫는다. 우리가 그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면 ,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곧바로 사과할 수 있다면 기다리지 말라



깊이 듣는 것만으로도 이미 상대방의 고통을 많이 덜어 준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깨어있는 마음으로 소비하라.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그분들의 행복한 모습이다."

"숨을 들이쉬면서,  나는 나의 아버지가 다섯 살짜리 아이라고 생각한다. 숨을 내쉬면서,  나는 그 아이에게 자비심을 갖고 미소짓는다."

우리는 자신의 아버지를 다섯 살짜리 아이로 생각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우리는 아버지가 언제나 어른이었다고 생각한다.  항상 엄격하고 권위적인 어른이었다고,  우리는 아버지 또한 한때는 남들로부터 쉽게 상처받는 수줍은 어린 소년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명상은 우리에게 모든 것은 태어나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 준다. 

삶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하나의 연속이다.

우리는 생일 축하 노래 대신 '삶이 계속 이어진 것을 축하하는' 노래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조차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날이다.  어머니는 다른 모습으로 계속 살아 있는 것이다.



걷는 명상을 하면서 자신이 아름다운 지구 위를 걸어가고 있음을 깨달을 때, 그대는 자기 자신과 자신이 내딛는 걸음을 매우 다르게 느끼게 될 것이다.  그때 그대는 좁은 시야와 한정된 틀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걸음을 한 발자국 옮길 때마다 그대는 자신이 지구 전체와 만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 자각과 함께 자신의 발걸음을 느낄 때,  그대는 많은 고통과 잘못된 관념들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다.

 깊은 자각 속에서 어떤 것을 만날 때,  그대는 곧 모든 것과 만난다.  이것은 시간에 대해서도 진실이다.  그대가 활짝 깨어 있는 상태로 한 순간과 만난다면,  그대는 곧 모든 순간과 만나는 것이다.  불교의 <화엄경>에 따르면,  그대가 한 순간을 깊이 느끼는 순간 그 순간 속으로 모든 과거와 미래가 들어온다고 한다.

  "하나 속에 모든 것이 들어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만난다는 것은 과거나 미래를 지워 버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만날 때, 그대는 현재가 과거로부터 생겨났으며,  또한 미래를 창조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현재를 만날 때, 그대는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만나는 것이다. 그대는 무한한 시간 전체, 실체의 궁극적인 차원을 만나는 것이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차 한 잔을 마실 때,  

그대는 현재의 순간을 만나고 시간 전체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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