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를 겸해 나는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만으로

도, 죽음에 내재해 있는 현실-죽음에 직면해서 허물어져가는 육체와 

함께 정신도 함께 스러지는-을 어느 정도 극복 할 수 있다는 말을 거

듭 강조했다. 하지만 그동안 주변에서 눈을 감는 사람 들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솔직히 나 자신도 그 '아름다운 죽음'을 별로 보지 못했다.


 죽는 것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는 말이

다. 무너지는 육체와 달리 마음의 상태를 아름답게 유지하며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갖가지 형태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나는 때때로 존 웹스터의 명구

가 참으로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는 인간이 출구로 삼고 있는

수만 개의 문이 있다.' 이 구절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구를 더하고

싶다. "오, 주여. 우리들 각자에게 알맞은 죽음을 주소서!" 


 정신의학적으로 어떻게 표현될지는 몰라도 '대결'이라는 단어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제임스 맥카티가 떠나간 지 4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 시대에도 널리 퍼져있는 죽음에 관한-죽음을 일종

의 인간 삶에 주어진 마지막 도전으로 보는-일반적 관념에 가끔씩

도전하고 있는지 나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죽음이란 고도의 생체 임상의학 장비로든,아니면 죽음을 우아

하게 받아들이자는 공인된 묵계의식-마지막을 향해 황량하고 슬프

게 달려가지 말고 대신 우아한 승리를 위해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하자

는-으로든,반드시 이겨내야 하는 잔인한 적수인 것이다.

 그러나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대결해야 할 상대는 죽음 

그 자체가 아니다. 죽음이란 자연의 연속성에서 나온 단순한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진짜 적, 즉 정작 맞서 싸워야 할 상대는 바

로 험상궂게 다가서는 질병이다. 다시 말해 죽음이란 질병과의 치열

한 접전 끝에 손을 들고만 상태, 정지된 결과를 의미한다. 질병과의

싸움은 인류에게 떨어진 수많은 질환들이, 우리 각자에게 언제든 예

고 없이 매정하게 파고들 수 있다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개

념 아래 이루어져야만 지속될 수 있다. 병상에서 이룬 승리는 아무리

크다 해도, 종말로 가는 길목에서 행진이 잠시 미뤄진 상태로 인식되

어야 할 것이다.


헨리 가디너는 토머스 브라운의 1845년 수상록 개정판의 부록에서17

세기 문인 프란시스 쿠알스의 문구를 인용, 소개했다. "오히려 서둘러 

끊어질뿐 인생의 한계점은 절대로 연장되지 않는다. 가느다란 심지를 

길게 연장시키는 것보다는, 주어진 기회를 최대로 이용하는 것이 현명

하다."세월의 흐름과 그에 따른 인체의 노화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

다.우리가 승리하는 인생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인생의 양보다는 질을 

추구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삶이 한계점에 이르게 되면 특별한 질환이나 사고를 당하지 않아도 그냥

흩어져버리게 마련인 것이다.


우리는 결국 늙기 때문에 죽는다 

신체가 단번에 급작스럼게 생화학적인 무정부 상태에 돌입했

든,아니면 유전인자들이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를 이루며 서서히 죽음

을 향해 나아갔든,우리는 결국 노령 때문에 죽는다. 우리의 몸속에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마모되어 결국은 함몰되도록 짜여진 프로

그램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령자들이 눈을 감게 되는 것은

죽음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으로 이어진 각자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중 스스로

보람있고 남들로부터칭송받을 수 있는 일을 할 시간은 사실 별로 길

지 않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결코 소홀하

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시인이 수줍어하는 정부에게,"시

간이 없어요!시간이 마차를 탄 채 가까이 달려오고 있어요"라고 노래

했듯 우리 가까이에 다가와 있는 죽음을 직시할 때,세상은 한층 더 빠

그레 진보될 수 있고 시간은 더 없이 소중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대의 죽음은 우주 질서의 한 부분이고, 세상 삶의 일부분으로,창조의

근원을 이룬다."

"타인이 그대에게 자리를 내준 것처럼 그대 역시 타인에게 자리를 내주라"

곧 죽음이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지니고 있으면 매사에 더욱

부지런하고 뜻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래야만 '조용하고 침착하게' 죽음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삶의 가치는 그 길이에 있지 않고 그 순간순간을 얼마나 알차게 유용했느냐에 있다. 아무리 오래 살았다 해도, 내용과 결과에 따라 실제로는

얼마 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게 마지막 시간이 찾아왔을 때, 생을 좀더 연장하기 위한 헛된 노력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며, 그로 인한 공연한 고통은 더더욱 받지 않을 생각이다.

바로 이러한 결심이 바로 내가 지니고 있는 '희망'이다.나는 홀로 버림받은 채로 죽지 않겠다는  결심 속에서, 또 내게 허락된 인생을 후회 없이 즐기는 속에서 그 희망을 찾고 있는 중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으로 보람있게 이용하다가 내가 사랑하고 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아름다운 추억들을 간직한 채 죽어갈 것이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며 우리가 영원히 이땅에 살기 위한 통과의례라는 생각과 매 순간순간이 마지막이라는 태도로 생을 일궈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자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관해 언급한 로버트 번스의 경고를 기억하자.그러면 불필요한 짐을 벗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은 결코 우리 계획에 따라 오지 않는다.

우리의 예상을 뒤엎으며 찾아든다.


축복 속에 기억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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