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Keats




도시에 오래 갇혔던 사람에겐



도시에 오래 갇혔던 사람에겐

 즐거워라, 맑게 트인 하늘의 얼굴을

 바라봄은, 푸르른 궁륭의 미소속에

따사로이 기도를 숨쉬는 것은.

보다 행복한 사람 있으랴. 만족스레

 나른한 피로로서 물결 이는 풀밭에

 꺼지듯 누워 사랑과 그리움의

조촐하고 정다운 이야기를 읽을 때.

집으로 가는 저녁 귀에 듣느니

 꾀꼬리 노래 소리. 눈에 보느니

작은 구름 한 점 빛나는 항해.

 하루가 쉽게도 지남이 섭섭할 뿐.

소리 없이 고이는 천사의 눈물

 맑은 대기 속에 떨어져 가듯.




엘진 경 의 대리석 조각품을 보고



내 마음은 약하다. 죽어가는 삶은 내 위에

원하지 않는 잠처럼 내리 눌러 오고

생각의 높은 산, 신들의 견딤에나 맞갖은

가파름은 내 이제, 하늘을 우러러보는

병든 독수리처럼 죽어야 할 것을 말해 오니.

아침의 눈뜸을 위하여 마련할

구름 품은 바람 없는 서러움에

내 울어야 함은 고즈넉한 탐닉이라.

머리가 어스름히 생각하는 그런 광휘는

마음에 말 못 할 소란을 움트게 한다.

이 놀라운 예술품 또한 어지러운 아픔을 주고

 그 속에 그리스의 영광과 거친

시간의 퇴화를 범벅하고--물결 높은 바다를

태양을, 장려한 그림자를 섞는다.



가을에 부쳐



안개와 무르익은 여물음의 계절

익어가는 햇님의 정다운 벗님으로서

햇님과 함께 은근스러이 초가지붕 밑 덩굴에

열매를 달아 주고 축복을 말하는 그대.

이끼 낀 나뭇가지 능금으로 휘이며

열매마다 속속들이 익음을 채우고

조롱박을 부풀리며 꿀개암 여물게 하고

꿀벌을 위하여 철 늦은 꽃 멍울지게 하여

따스한 철 언제까지나 끝날 날 없을 듯.

벌들 잉잉댄다.

여름이 벌집에 넘쳤기에.


가멸 속에 자리한 그대 누구나 보았다.

그대를 찾아나서면, 그대는 곳간의 마루에서

이삭 날리는 바람으로 머리카락 날리며

아무렇게나 앉아 있다. 아니면 그대

양귀비 진한 향기에 취해 떨어질 듯

곤히 반쯤 베어낸 밭두렁에 잠들어 있다.

다음 이랑의 곡식이며 얽혀 있는 꽃 그대로 둔 채.

또 어떤 때 이삭 줍는 사람처럼 그대는 

짐을 인 머리를 가누며 개울을 건너고

또는 사과즙 짜는 곳에서 참을성 있게

방울 듣는 사과즙을 몇 시간이고 지켜본다.


봄날의 노래는 어디에 있는가? 그 어디에 있는가?

생각지 말라 봄노래. 그대 노래 없지 않으니.

아롱진 구름 부드러이 스러지는 날을 꽃 피우고

그루터기 듬성한 밭 장밋빛으로 물들일 때

강가의 버드나무 사이 지고 이는 바람따라

멀리 불려 올려지고 또는 처져 내리며

하루살이떼 서러운 합창으로 우느니.

한껏 자랑 양떼 개울가에 울고

귀뚜라미  나무울 곁에 운다. 동산의 한쪽에서

부드럽고 드높게 울새는 노래하고

제비들 모여 하늘에서 지저귀느니.



당신 마음에 길잃은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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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 UNE PETITE MAISON



대지 역이 걸어서 이십 분 만에 닿을 수 있는 가까운곳


호수는 창문에서 사 미터 앞에 있었고,도로는 문 뒤로

사 미터 떨어져 있었다.다뤄야 할 면적은 삼백 제곱미터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평선들 중 하나인, 건물 때문에 

망쳐져서는 안 될,비길 데 없이 훌륭한 전망을 제공한다.


집의 높이는 이 미터 오십 센티미터다(법규상 최소 높이)이 집은

태양을 향해 길어진 상자다.떠오르는 해는 비스듬한 채광창을 통해

한쪽 끝에서 받아들여진다.그 후에 해는 온종일 집 앞을 순회한다.

  태양,공간,푸르름...등을 얻었다.


긴 안목으로 보면,어느 방향에서나 보이는 압도적인 풍경은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이런 조건들로는'인간'이 더이상''보지'못한 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풍경에 의미를 부여하려면 철저한 해결책을 통해 풍경을 한정짓고

크기를 결정해야한다.전략적 지점에 뚫린 개구부를 통해서만 방해

받지 않는 조망을 가능케 하고 나머지 전망은 담장들로 가리는 것이다.

 여기에 적용된 해법은 북쪽,동쪽과 남쪽의 벽이 십 제곱미터의

아주 작은'정원'을 에워싸 실내화된 녹색의 방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개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길가 보행자들의 다리 길이쯤 되는 높이의 

창살 난간에 작은 도약대를 마련했다. 개는 그곳을 매우 즐긴다!개는 현관에서

도약대가 있는 난간까지 이십 미터 거리를 질주해와 미친 듯이 짖는다!


갑자기 담장이 끝나고 멋진 경관이 펼쳐진다.빛,공간,물과 산....

자,산책이 제대로 가동됐다!

 

 위로 올라갈수록 돌을 들여쌓아 두께가 얇아지는 호숫가의 오래된 

담장이 차지한 이곳은,물과 산이 어우러져 직각의 교차라는 멋진

모습을 보여 준다.


집으로 들어선다.

십일 미터 길이의 창문이 집에 품격을 준다!

이것은 창문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위해 고안된 구조상의 

혁신이다.집의 구성체이자 가장 중요한 특징이 되는 것이다.


집의 제일 끝부분에 진정한'건축적 요소'가 있다.

벤치로 이용되는 판자가 있고,그 뒤에 세개의 작은 수평창들이 지하

실을 밝힌다.그것은 행복을 주기에 충분하다.


지붕으로 올라간다. 지붕에 오르는 것은 이전 여러 세기 동안 몇몇

문화권에서 누렸던 즐거움이었다.

 철근 콘크리트 덕분에 가능해진 옥상 테라스에는 십오 내지 이십

센티미터 두께의 흙이 덮여"옥상정원"이 됐다.

우리가 그곳에 있다.지금은 팔월의 삼복더위다.잔디는 바싹

말랐다!아무래도 좋다!각각의 조그마한 싹들이 그림자를 만들고,

밀집한 뿌리는 두꺼운 단열층을 형성한다.

열과 냉기를 차단하고 어떠한 유지비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무료로 온도를 조절한다.


 세탁장과 건조실 등을 밝히는 채광창


주목!지금은 구월 말이다.가을꽃이 피어나고,야생 제라늄이 만든

두꺼운 카펫이 가득 펄쳐져 옥상은 다시 한번 푸르러졌다.놀라운

광경이다. 봄이면 풀이 나고 꽃이 핀다. 여름에는 무성한 풀들이 길게

자라 초원이 된다.옥상정원은 해,비,바람과 씨를 옮기는 새들의

도움을 받으며 자생한다.


가족을 위한 작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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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문학동네



인격이 일으키는 그 사람에 대한 혐오감도 떨쳐낼 수 가 없었다.

서로 상반된 감정 사이에서 난처해진 겐조는 잠시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과거의 감옥생활 위에 현재의 자신을 쌓아올린 그는 반드시 현재의 

자신 위에 미래의 자신을 쌓아올려야 했다.그것이 겐조의 인생관이

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올바른 생각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인생관에 따라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이 지금의 그에게는 헛되이 

늙어간다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결과도 가져다주지 않을 듯했다.

 "아무리 열심히 학문을 배우고 죽는다 한들 인간은 결국 하찮은 존

재야."

겐조는 지금의 자신이 결혼할 때의 자신과 아내 눈에 얼마나 다르게 

비칠지 생각하며 걸었다. 아내는 아이를 낳을 때마다 늙어갔다. 머리

카락이 한 움큼씩 빠질 때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벌써 세번째 아

이를 임신 중이었다.


'떨어져 있으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멀어지지만, 함께 있으면 설

령 원수지간이라 하더라도 그럭저럭 살아가게 되지. 결국 그것이 인

간이니까.'


완고한 마음 한구석에는 약하고 미적지근한 어떤것이 늘 붙어 다녔다.



한 가지 일은 만 가지에 통하는 법이다.이자가 이자를 낳고 새끼가 새

끼를 치듯이 두 사람은 날이 갈수록 멀어졌다. 어쩔 수 없이 저지르는

죄와 일부러 저지르는 죄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겐조는 질이

좋지 않은 방법에 능통한 장인을 미워했다.


 '너는 결국 무엇을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그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겐조는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한 한 대답을 회피하려고 했다. 그러자 목

소리는 더욱 겐조를 추궁했다. 몇 번이고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겐조는 끝내 울부짖었다.

 "모르겠어."

목소리가 갑지가 코웃음을 쳤다.

 '모르는 게 아니지.알아도 그곳에 도달할 수 없는 거겠지.도중에 멈춰

있는 거겠지."



'나는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위로를 겸해 나는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만으로

도, 죽음에 내재해 있는 현실-죽음에 직면해서 허물어져가는 육체와 

함께 정신도 함께 스러지는-을 어느 정도 극복 할 수 있다는 말을 거

듭 강조했다. 하지만 그동안 주변에서 눈을 감는 사람 들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솔직히 나 자신도 그 '아름다운 죽음'을 별로 보지 못했다.


 죽는 것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는 말이

다. 무너지는 육체와 달리 마음의 상태를 아름답게 유지하며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갖가지 형태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나는 때때로 존 웹스터의 명구

가 참으로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는 인간이 출구로 삼고 있는

수만 개의 문이 있다.' 이 구절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구를 더하고

싶다. "오, 주여. 우리들 각자에게 알맞은 죽음을 주소서!" 


 정신의학적으로 어떻게 표현될지는 몰라도 '대결'이라는 단어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제임스 맥카티가 떠나간 지 4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 시대에도 널리 퍼져있는 죽음에 관한-죽음을 일종

의 인간 삶에 주어진 마지막 도전으로 보는-일반적 관념에 가끔씩

도전하고 있는지 나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죽음이란 고도의 생체 임상의학 장비로든,아니면 죽음을 우아

하게 받아들이자는 공인된 묵계의식-마지막을 향해 황량하고 슬프

게 달려가지 말고 대신 우아한 승리를 위해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하자

는-으로든,반드시 이겨내야 하는 잔인한 적수인 것이다.

 그러나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대결해야 할 상대는 죽음 

그 자체가 아니다. 죽음이란 자연의 연속성에서 나온 단순한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진짜 적, 즉 정작 맞서 싸워야 할 상대는 바

로 험상궂게 다가서는 질병이다. 다시 말해 죽음이란 질병과의 치열

한 접전 끝에 손을 들고만 상태, 정지된 결과를 의미한다. 질병과의

싸움은 인류에게 떨어진 수많은 질환들이, 우리 각자에게 언제든 예

고 없이 매정하게 파고들 수 있다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개

념 아래 이루어져야만 지속될 수 있다. 병상에서 이룬 승리는 아무리

크다 해도, 종말로 가는 길목에서 행진이 잠시 미뤄진 상태로 인식되

어야 할 것이다.


헨리 가디너는 토머스 브라운의 1845년 수상록 개정판의 부록에서17

세기 문인 프란시스 쿠알스의 문구를 인용, 소개했다. "오히려 서둘러 

끊어질뿐 인생의 한계점은 절대로 연장되지 않는다. 가느다란 심지를 

길게 연장시키는 것보다는, 주어진 기회를 최대로 이용하는 것이 현명

하다."세월의 흐름과 그에 따른 인체의 노화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

다.우리가 승리하는 인생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인생의 양보다는 질을 

추구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삶이 한계점에 이르게 되면 특별한 질환이나 사고를 당하지 않아도 그냥

흩어져버리게 마련인 것이다.


우리는 결국 늙기 때문에 죽는다 

신체가 단번에 급작스럼게 생화학적인 무정부 상태에 돌입했

든,아니면 유전인자들이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를 이루며 서서히 죽음

을 향해 나아갔든,우리는 결국 노령 때문에 죽는다. 우리의 몸속에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마모되어 결국은 함몰되도록 짜여진 프로

그램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령자들이 눈을 감게 되는 것은

죽음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으로 이어진 각자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중 스스로

보람있고 남들로부터칭송받을 수 있는 일을 할 시간은 사실 별로 길

지 않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결코 소홀하

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시인이 수줍어하는 정부에게,"시

간이 없어요!시간이 마차를 탄 채 가까이 달려오고 있어요"라고 노래

했듯 우리 가까이에 다가와 있는 죽음을 직시할 때,세상은 한층 더 빠

그레 진보될 수 있고 시간은 더 없이 소중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대의 죽음은 우주 질서의 한 부분이고, 세상 삶의 일부분으로,창조의

근원을 이룬다."

"타인이 그대에게 자리를 내준 것처럼 그대 역시 타인에게 자리를 내주라"

곧 죽음이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지니고 있으면 매사에 더욱

부지런하고 뜻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래야만 '조용하고 침착하게' 죽음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삶의 가치는 그 길이에 있지 않고 그 순간순간을 얼마나 알차게 유용했느냐에 있다. 아무리 오래 살았다 해도, 내용과 결과에 따라 실제로는

얼마 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게 마지막 시간이 찾아왔을 때, 생을 좀더 연장하기 위한 헛된 노력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며, 그로 인한 공연한 고통은 더더욱 받지 않을 생각이다.

바로 이러한 결심이 바로 내가 지니고 있는 '희망'이다.나는 홀로 버림받은 채로 죽지 않겠다는  결심 속에서, 또 내게 허락된 인생을 후회 없이 즐기는 속에서 그 희망을 찾고 있는 중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으로 보람있게 이용하다가 내가 사랑하고 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아름다운 추억들을 간직한 채 죽어갈 것이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며 우리가 영원히 이땅에 살기 위한 통과의례라는 생각과 매 순간순간이 마지막이라는 태도로 생을 일궈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자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관해 언급한 로버트 번스의 경고를 기억하자.그러면 불필요한 짐을 벗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은 결코 우리 계획에 따라 오지 않는다.

우리의 예상을 뒤엎으며 찾아든다.


축복 속에 기억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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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문학동네

         


할아버지는 더이상 우편함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날

이후로 쇼코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작은 집에서 인형처럼 붙박여 있던 쇼코의 모습이 유령처럼 언

뜻언뜻 눈앞을 스쳤다. 물리치료사가 되었겠지. 그리고 돈을 벌기 시

작했을 테고, 당시의 나는 쇼코가 넘 쉬운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

다. 스물세 살에 벌써 직업을 정하고 태어난 소읍에서 떠나지 못한다

는 건 형편없는 선택이라고,

 그때만 해도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

고 생각했다. 나는 비겁하게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마음속으

로 비웃었다. 그런 이상한 오만으로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

어버렸지만, 그때는 나의 삶이 속물적이고 답답한 쇼코의 삶과는 전

혀 다른, 자유롭고 하루하루가 생생한 삶이 되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내가 머무는 세계의 한계를 부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

은 정반대였다. 늘 돈에 쫓겼고, 학원 일과 과외 자리를 잡기위해서

애를 썼으며 돈 문제에 지나치게 예민해졌다.

영감은 고갈 되었고 매일매일 괴물 같은 

자의식만 몸집을 키웠다.

 그래서 꿈은 죄였다. 아니, 그건 꿈도 아니었다.



  한지는 아픈 동물들을 치료했던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조금의

가망도 없어 보이던 동물이 살아나기도 하고, 쉽게 치료할 수 있을 거

라 믿었던 동물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어 죽기도 한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살릴 수 있는 동물을 죽인 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을 느꼈고

지금도 그렇기는 하지만 최선을 다할 뿐, 그 최선이 항상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배워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기억은 재능이야, 넌 그런 재능을 타고났어."

  할머니는 어린 내게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 너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해라.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

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

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사람이 현생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윤회한다

고 했다. 마음이 기억에 붙어버리면 떼어낼 방법이 없어 몇번이고 다

시 태어나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먹혀

버리지 말라고 했다. 안 그러면 자꾸만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

고 했다. 나는 마지막 그말이 무서웠다.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

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그가 하는 일들이 돈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무능하고 가

치 없는 사람이라고 단죄할 수는 없었다.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필요하다고 여자는 생각했다.헤어롤을 마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그와 같은 사람도 필요하다. 돈을 벌어 가족을 부

양하는 남편이 있는가 하면 집안일을 하며 아이를 돌보는 남편도 있다.

여자는 세상을 살며 그처럼 다정하고 섬세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

다. 깨끗한 샘물 같은 그에게 더러운 욕탕이 되라고는 할 수 없는 일

이었다. 그가 세상에 소용없는 사람처러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는 세상의 그 많은 소용 있는 사람들이 행한 일들 모두가 진실로

세상에 소용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자는 부모와 남편의 죽음을 겪으며 자신의 일부가 죽어버리는 경

험을 했다. 마음속에서 죽어 없어진 그 부분은 죽은 사람들과 함께 세

상에서 사라져버렸다. 한동안은 제대로 숨을 쉴 수도, 잠을 잘 수도,

먹을 수도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오래도록 울고 나니 그들이

없는 삶과 그들이 여자에게 남겨놓고 간 세상이 남았다. 그 모든 것들

이 여자에게는 소중했다. 여자는 여자 안에 여전히 살아 있는 그들에

게 보다 좋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고, 전보다 나아진 자신을 보여주

고 싶었다. 슬픔으로 깨끗해진 마음에 곱고 아름다운 것들만 비춰 보

여주고 싶었다.


온전한 나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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